김주원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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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주원(金周元)은 신라 시대의 인물로, 태종 무열왕의 5대손이다. 선덕왕 사후 왕위 계승자로 추대되었으나, 알천 강물이 불어 건너지 못하여 상대등 김경신(원성왕)에게 왕위를 넘겨주었다. 이후 하슬라로 피신하여 하서주 도독에 임명되었으며, 명주군왕으로 봉해졌다. 그의 둘째 아들 김헌창은 웅주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명주국은 신라 중앙 정부와 소원해져 후삼국 시대까지 반독립국으로 존재했다. 김주원은 김유정과 연화부인의 아들이며, 정숙왕후 박씨와 혼인하여 김종기, 김헌창, 김신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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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의 도독 - 김서현
김서현은 가락국 구형왕의 손자이자 신라 각간을 지낸 인물로, 김유신의 아버지이며, 각간, 소판, 대량주도독 등을 역임하며 군사적으로 공헌했고, 그의 딸 문명왕후는 태종 무열왕과 혼인했다. - 신라의 도독 - 김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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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창은 신라 하대에 아버지 김주원의 왕위 계승 실패에 불만을 품고 웅천주에서 반란을 일으켜 장안국을 세웠으나 진압군에 패배하여 자결한 인물로, 그의 난은 신라 하대 정치적 혼란의 대표적 사건이다. - 신라의 문신 - 최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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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신라)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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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김주원(金周元) |
원래 이름 | 김주원(金周元) |
별명 | 미상 |
생애 | |
출생일 | 생년 미상(生年 未詳) |
출생지 | 미상 |
사망일 | 몰년 미상(沒年 未詳) |
사망지 | 미상 |
매장지 | 미상 |
가족 관계 | |
부왕 | 미상 |
모후 | 미상 |
배우자 | 정숙왕후박씨(貞淑王后朴氏) |
자녀 | 김종기(金宗基) 김헌창(金憲昌) 김신(金身) 김자사(金紫絲) |
왕위 | |
즉위 | 김주원(金周元) |
재위 기간 | 786년 ~ ? |
전임자 | 미상 |
후임자 | 김종기(金宗基) |
기타 정보 | |
묘호 | 미상 |
시호 | 미상 |
종교 | 미상 |
가문 | 미상 |
왕조 | 명주군왕(溟州郡王) |
목록 | 명주군왕 |
2. 생애
김주원은 태종 무열왕의 셋째 아들 김문왕의 5대손이다. 후대에 작성된 신라김씨 선원세계에 의하면 증조부는 김대충, 조부는 김사인, 아버지는 김유정이라 하나 이는 불확실하다. 선덕왕(김양상)이 재위 6년 만에 죽자 대신들의 추대로 왕위 계승자로 내정되었으나 금성으로 오기 전 알천 강가의 냇물이 불어서 건너오지 못하자, 이는 곧 하늘의 뜻이라 여겨져 상대등이었던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하였다. 원성왕 즉위 후 후환을 두려워한 김주원은 하슬라로 피신했고, 2년 후에 그곳에서 하서주도독에 임명되면서 명주군왕(冥州郡王)에 봉해졌다. 하서주는 그의 후손들이 도독을 세습하며 가문의 영지가 되어서 명주국(冥州國)으로 불리었다.
그의 둘째 아들은 김헌창이었다.
2. 1. 왕위 계승 실패
김주원은 태종 무열왕의 셋째 아들 김문왕의 5대손이다. 후대에 작성된 신라김씨 선원세계에 의하면 증조부는 김대충, 조부는 김사인, 아버지는 김유정이라 하나 이는 불확실하다. 선덕왕(김양상)이 재위 6년 만에 죽자 대신들의 추대로 왕위 계승자로 내정되었으나 금성으로 오기 전 알천 강가의 냇물이 불어서 건너오지 못하자, 이는 곧 하늘의 뜻이라 여겨져 상대등이었던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하였다. 원성왕 즉위 후 후환을 두려워한 김주원은 하슬라로 피신했고, 2년 후에 그곳에서 하서주도독에 임명되면서 명주군왕(冥州郡王)에 봉해졌다. 하서주는 그의 후손들이 도독을 세습하며 가문의 영지가 되어서 명주국(冥州國)으로 불리었다.그의 둘째 아들은 김헌창이었다. 김헌창은 훗날 아버지가 왕이 되지 못한 것에 원망을 품고 헌덕왕 대에 웅주(충청남도 일대)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되었다. 이 일로 인해 명주국은 신라 중앙정부와의 사이가 소원해져 후삼국시대까지 반독립국 상태로 존재했다.
2. 2.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은 태종 무열왕의 셋째 아들 김문왕의 5대손이다. 후대에 작성된 신라김씨 선원세계에 의하면 증조부는 김대충, 조부는 김사인, 아버지는 김유정이라 하나 이는 불확실하다. 선덕왕(김양상)이 재위 6년 만에 죽자 대신들의 추대로 왕위 계승자로 내정되었으나 금성으로 오기 전 알천 강가의 냇물이 불어서 건너오지 못하자 이는 곧 하늘의 뜻이라 여겨져 상대등이었던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하였다. 원성왕 즉위 후 후환을 두려워한 김주원은 하슬라로 피신했고, 2년 후에 그곳에서 하서주도독에 임명되면서 명주군왕(溟州郡王)에 봉해졌다. 하서주는 그의 후손들이 도독을 세습하며 가문의 영지가 되어서 명주국(溟州國)으로 불리었다.김헌창은 그의 둘째 아들이었다. 후에 아버지가 왕이 되지 못한 것에 원망을 품고 헌덕왕 대에 웅주(충청남도 일대)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되었다. 이 일로 인해 명주국은 신라 중앙정부와의 사이가 소원해져 후삼국시대까지 반(半)독립국 상태로 존재했다.
2. 3. 김헌창의 난
김헌창은 김주원의 둘째 아들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왕이 되지 못한 것에 원망을 품고 헌덕왕 때 웅주(지금의 충청남도 일대)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되었다. 이 일로 명주국은 신라 중앙정부와 사이가 소원해져 후삼국시대까지 반독립국 상태로 존재했다.3. 가계
진지왕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김유정, 어머니는 연화부인 박씨이다. 왕비는 정숙왕후 박씨이며, 아들로는 김종기, 김헌창, 김신(金身) 3형제가 있었다. 동생은 김내흥이다.
3. 1. 조상
3. 2. 후손
김유정과 연화부인 박씨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왕비는 정숙왕후 박씨이다. 장남 김종기는 여러 관직을 거쳐 집사성(執事省) 시중(侍中)을 지냈으며, 소판(蘇判) 관등을 가졌다. 김종기의 아들, 즉 김주원의 손자는 김정여와 김장여이다. 차남 김헌창은 822년에, 그의 아들 김범문은 825년에 각각 반란을 일으켰다. 삼남 김신(金身)의 손자는 김자사(金紫絲)이다. 김주원에게는 김내흥이라는 동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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